본문 바로가기

영화

파수꾼 - 젊은 영화, 깊이 있는 영화, 놓칠 수 없는 수작

반응형
SMALL


파수꾼 - 젊은 영화, 깊이 있는 영화, 놓칠 수 없는 수작  영화의 파편들 

2013/01/18 12:54

복사http://artemio.blog.me/10157238420

전용뷰어 보기

이 포스트를 보낸곳 (1)

 

 

파수꾼

감독
윤성현
출연
이제훈, 서준영, 박정민, 조성하
개봉
2010 대한민국
평점

리뷰보기


파수꾼이라는 영화

 

윤성현 감독이 1982년생이니까, 이 영화를 만들 때는 아직 이십대였나보다. 젊은 신예 감독이 장편 데뷔작으로 이런 깊이 있고 탄탄한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게 정말 놀랍다. 이 영화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제작연구과정의 졸업 작품 격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총 제작비 5천만원 이하에, 배우들의 출연료 총합도 500만원을 넘지 않았다고 한다. 입소문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보긴 했지만, 일반적으로는 이런 영화가 있었다는 것 조차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 영화는 대단한 수작이다.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관람할 수만 있었다면, 보다 더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파수꾼이라는 제목

 

파수꾼은 무언가를 지키는 사람이다. 지키기 위해 바라보는 사람이다. 이 영화의 제목이 파수꾼이지만, 영화속에서 파수꾼은 찾아볼 수 없다. 도대체 파수꾼은 누구인가, 파수꾼은 어디있는가, 이 영화는 질문한다. 친구들도, 가족들도, 선생님들도 파수꾼이 되어주지 못한다. 학교도 사회도 파수꾼이 되어주지 못한다. 결국 나 스스로 나 자신의 파수꾼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인가. 나를 이루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라 친구와 가족과 사회가 포함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기태의 죽음

 

파수꾼이 없었던,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파수꾼이 되지 못했던 기태는, 죽는다. 영화는 기태의 죽음을 일찍부터 알려준다. 충격적으로 제시하지도 않고, 기태의 죽음을 통해 특별한 긴장감을 조성하려 노력하지도 않는다. 대신, 기태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찾아보는 방식을 택했다. 관객은 영화를 보면서, 기태가 어떻게 되는지, 또 기태의 친구들이 어떻게 되는지, 어떤 사실적인 결말에 초점을 맞추게 되지 않는다. 이런 일이 왜 벌어지게 되었을까에 집중할 수 있게 초대된다. 

 

기태의 삶

 

기태의 삶은 마감된 이후에 조망된다. 아버지는 기태에 대해서, 기태의 생활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기태가 죽은 후, 그 길지 못했던 삶을 추적해본다. 그렇게 죽음은 삶을 되살려낸다. 윤성현 감독은 한 인물의 삶을 보다 더 잘 드러내는 방법으로 죽음이라는 사건을 택했다. 그리고 그렇게 들여다 본 한 인간의 삶과 죽음을 통해서, 인간에 대해, 또 관계라는 것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들을 불러일으켜낸다.

 

 

 

남학생들이 겪게 되는 거친 세계

 

남녀공학의 경우는 아무래도 조금 덜 할 것 같고, 남자 고등학교의 경우는 이 영화가 보여준 세계와 닮아 있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아주 흡사했다. 그건 철저한 계급 사회다. 내가 복도를 지나다니면서 살짝이라도 부딪혀도 되는 상대가 있었고 그래서는 절대 안되는 상대가 있었다. 눈이 마주치게 되면 눈에 힘을 빼야 하는 상대들이 존재했다. 눌러 이기든지, 그냥 찌그러져 있든지 둘 중의 하나를 언제나 선택해야 했다. 참 거칠고 폭력적인 세계였고, 그 안에서 내 위치를 잘 지키고 있지 않으면 조용히 살기 어려웠다. 찌그러져 있는 게 싫어서 조금 일어나려면, 이 영화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말 중의 하나였던, "너 많이 컸다"란 도전을 무수히 받아내야 했다. 힘으로 제압해내지도 못하고, 찌그러져 있기도 싫은 사람들을 위한 또 하나의 살 길은 정치적인 길이었다. 힘이 아닌 수완으로 권력의 그늘에 들어가는 방법이었다. 

 

친구라는 거

 

그런 거친 세계가 친구들 사이에 펼쳐져 있었다. 군대라는 곳은 그보다 더할 수도 있지만, 그건 좀 다르다. 군대는 겉으로도 속으로도 계급이 우선하는 곳이다. 하지만, 학교는 친구들 사이에 계급 사회가 펼쳐진 곳이었다. 그리고, 특이한 점이 하나 있는데, 그 계급이라는 것이 군대와는 달리 유동적이라는 것이다. 외부 요인에 의해서 요동칠 수도 있고, 내부 갈등의 폭발로 인해 뒤집어질 수도 있다. 뒤바뀐 서열은 많은 혼란을 야기한다. 이 사이에 친구 관계라는 것은, 권력과 상관 관계가 생기기 때문에, 그 혼란 속에 조정 작업을 거치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 동윤과 기태의 싸움 이후에 기태의 친구들이 꺼지란다고 진짜 꺼져버린 것은 그 서열의 흔들림과 무관하지 않다. 이 세계에서 친구 관계는 불안정하다. 특히, 권력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일수록 흔들리는 우정 속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언제나 그 가진 것 덕분에 주변에 머무르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 단순한 시절엔 싸움을 잘하거나 공부를 잘하면 친구가 많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와 조금 더 복잡한 세상 속에 들어서면, 그 권력은 보다 복잡한 모양을 갖게 된다. 하지만, 결국 똑같다. 가진 것이 친구를 만든다. 그게 돈이든, 힘이든, 명예든, 지위든 간에. 

 

소수의 절친

 

절친은 여럿일 수 없다. 글쎄 몇 명까지 가능하다고 말할 수야 없지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다 진정한 친구가 되긴 어렵고, 소수의 절친들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 영화 속에서 기태와 동윤, 희준 세 사람이 절친이었다. 이 절친은 인간 관계의 근본을 의미한다. 조금만 과장하자면, 절친이란 인간 관계의 시작이자 끝이다. 내가 힘들 때 위로받을 수 있는 곳이고, 어려울 때 힘을 얻을 수 있는 곳이고, 가면을 벗어버리고 내가 진정한 내 모습 그대로 존재할 수 있는 곳이다. 기태에게 동윤과 희준은 그런 절친들이었다.

 

 

 

인간은 결국 고독한 존재

 

절친들이 차례로 떠나자 기태는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 그 충격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죽음이라는, 단 한 번밖에 일어날 수 없는, 일생의 중대한 사건을 단순하게 몇 마디로 정리해낼 수는 없다. 기태는 왜 죽었을까? 영화 파수꾼은 기태의 죽음에 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몇 가지 인과 관계에 대한 해답도 제시한다. 하지만, 그 일생일대의 사건은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것만은 아니다. 그는 친구들의 배신이 견딜 수 없었다. 그들이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기태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 그 떠남은 배신일 수밖에 없었고, 절친들의 배신은 그를 무엇보다 괴롭게 했다. 그들이 떠나가면서 했던 냉정한 말과 표정들은 보다 더 날카로운 비수가 되기도 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권력과 명예도 잃어버린다. 그 덧없는 세상의 가치들은 기대만큼의 지속 시간도 채워주지 못했다. 영원한 가치가 될 수 없는 줄 알면서도 거기에 목매는 인간 군상들은, 언제나 기대보다는 빨리 찾아오는 벗겨진 겉가죽을 마주하는 순간들을 이겨내지 못한다. 중요하게 여길수록 그 상실은 크게 다가온다. 기태는 또한 철저한 고독과 마주했고, 그 끝없는 암흑은 그를 다시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절망 속에 빠뜨렸다. 아마도 그는 그 모든 원인 제공자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지 않았을까 싶다. 그 원인이 외부에 있지 않고 내부에, 자기 자신에게 있었기 때문에 그는 더 괴로웠고 이겨내지 못한 것 아닐까. 그는 그 자기 혐오를 견뎌낼 수 없었다. 자신의 눈에 비친 루저, 실패자의 모습을 그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를 지키는 파수꾼

 

기태는 그렇게 자신을 지켜내지 못한다. 그 커다란 불행은 또 다른 불행들을 낳을 것이다. 절친이었던 희준과 동윤에게도 크나큰 충격과 깊은 상처를 안겨주었고, 기태의 아버지에게도 치유될 수 없는 아픔을 남겨주었다. 그 모든 아픔과 괴로움은 또 다시 본인의 몫이다. 스스로 이겨낼 수밖에 없다. 내가 지키지 못한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외부에 의존해서는 이겨낼 수 없다. 그 위로와 도움은 내가 힘들때마다 오지 못한다. 내가 어려울 때마다 힘을 주고 구원해주지 못한다. 나 스스로 자신의 파수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파수꾼은 외부보다 내부를 경계해야 한다. 걷잡을 수 없는 더 커다란 붕괴는 안으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권력욕, 명예욕 등 덧없는 가치들이 나를 삼키는 것으로부터 지켜야 한다. 내 편으로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내 친구라는 착각으로부터도 나를 지켜낼 필요가 있고, 나 자신을 똑바로 직시해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감정을 지킬 수 있는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

 

 

 

관계라는 것

 

관계는 나 자신이 정립된 후에야 제대로 맺을 수 있다. 의존도가 너무 높은 관계는 위험하다. 너로 인해 내가 살 수 있는 관계라는 건 없다. 혼자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다음에야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동성이건 이성이건 마찬가지다. 관계에 있어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친할수록 예의와 배려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기태는 절친들에게 너무 편하게 자기 마음대로 대했다. 그리고 그들이 이해해줄 거라고 믿었던 것 같다. 친구란, 이해하지 못할 부분까지 이해해줄 수 있는 사이일 수는 있지만, 그 한계는 엄연히 존재한다. 세상에는 아니, 관계에는 넘지 말아야 될 선이 있다. 선을 넘어서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새로 관계를 쌓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그 선을 넘는다는 건, 관계를 무너뜨릴 수 있고, 결국 나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기태는 희준이 좋아했던 보경의 구애를 거절했고, 동윤의 여자친구 세정의 소문에 대해 친구에게 알릴 의무감을 느꼈다.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기태는 진심으로 두 친구를 좋아했던 것 같고, 마음속으로는 두 친구를 진심으로 대했던 것 같다.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에 실수가 있었지만, 그건 사소한 부분이고 더 커다란 부분인 진심은 친구들의 마음에 닿아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둑을 무너뜨리는 건 작은 균열이고, 그 균열은 아무리 작아보여도 결코 작은 것일 수 없다. 

 

 

 

낙인 찍힌다는 것

 

이 영화는 고등학교라는 제한적 사회 속에서 아주 제한된 몇 명의 인물만을 보여준다. 선생님이나 부모님도 비중이 아주 적고, 몇몇 친구들과 그 관계에 집중한다. 하지만, 그렇게 보여진 작은 세계는 아주 넓은 세상을 드러내주고 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인간을 보고, 세상을 보게 된다. 영화 속에서 세정이라는 여학생은 기태와 동윤의 관계 변화를 보여주기 위한 부수적인 역할을 했다. 영화에는 조연이 있지만, 삶 속에 조연은 없다. 이 영화는 기태와 동윤의 관계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춘 시각을 가지고 있지만, 세정에게 초점을 옮겨서 생각해보면 또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세정은 동윤에게 낙인찍혀본 적 있냐고 묻는다. 이때가 아마 세정이 동윤에게 본격적으로 마음이 열리는 시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동윤의 장난스런 대응으로 넘어갔지만, 세정은 심각했었나보다. 무심코 지나가버린 장면이었지만, 세정에 대한 세간의 평가에 관해 친구로서 기태가 동윤에게 조언할 때 이 장면은 다시 부각된다. 동윤은 기태 앞에서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그 '소문' 앞에서 흔들렸다. 세정이 동윤에게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다음날 병원에 누워있는 세정을 본 동윤이 기태에게 달려가 따지는 장면이 나온다. 서로간의 오해가 커지는 시점이었고, 각 장면에 대해 친절한 설명이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아마도 세정은 그 '낙인'에 대한 부담으로 사랑이 커질수록 괴로워해서 결국 자살 기도라도 한 것 같다. 

 

이 '소문으로 찍힌 낙인'은 우리가 어디에서든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 소문은 사실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다. 소문이라는 것이 근거가 있는 경우도 많긴 하지만, 상당히 과장된 경우가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특정 시각에서 재구성된 내용이다. 그런 장난은 사람을 죽일 수 있다. 그런 심각한 장난을 왜 사람들은 즐길까. 그리고 또 왜 우리는 그 세간의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배우들, 그리고 이제훈

 

배우들 이야기를 안할 수 없다. 기태가 죽었다는 특별한 사건을 제외하면, 이 영화 속 이야기는 아주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일상에서 흔히 만나볼 수 있는 누구나 한번쯤은 부분적으로라도 가지고 있을만한 이야기이다. 그런 흔한 이야기를 특별하게 엮어낸 신예 감독의 능력을 우선 주목해야겠다. 또한 그 역량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실감나게 연기를 해준 배우들을 주목해야겠다. 그 두 조화가 이 영화를 호소력 있고 진한 여운이 있는 힘있는 영화로 만들었다. 장면마다 디테일이 아주 자연스럽고, 현실감 넘친다. 대사도 역시 현실적이고 자연스럽다. 극적인 효과를 배제한 대신, 사실적인 생동감을 끌어올려서 몰입도를 높였다. 어린 배우들이 그런 감독의 의도를 넘치도록 재현해내고 있다. 급격한 감정의 변화도 감탄스러울 정도로 생생하게 표현해주고 있다. 특히, 이제훈의 연기는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건축학개론과 고지전에서도 대단한 연기를 보여줬지만, 파수꾼에서의 기태 역할은 그 이상이었다. 이런 젊은 배우들과 감독의 역량을 보며, 한국 영화의 미래가 상당히 밝을 수 있겠다고, 이 결코 밝지 않은 영화를 보며 생각해본다.

 

일시: 2013년 1월 17일 오후 7시

장소: 시네마테크(KOFA) 1관 (I열 11번)

 

※ 시네마테크가 주목한 2011년의 한국 영화 리플레이: http://koreafilm.or.kr/cinema/program_view.asp?g_seq=100&p_seq=631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