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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비의/에소테릭 종교)의 대표적 사상 카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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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비의/에소테릭 종교)의 대표적 사상 카발라  뉴에이지/신비영성 

2012. 2. 23. 19:19

복사https://blog.naver.com/yoochinw/130132183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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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초기근대세계 백과사전"(Encyclopedia of the Early Modern World)에 실린 (비기독교적 입장에서 본) "카발라"에 대한 내용입니다. 현대 미스테리 사상을 대변하는 카발라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간단하지만 의미있는 내용이오니 유의해서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출처<<) 참고로, Wiki(Cabala)<<]

 

 

카발라

 

(카발리스트들에게는) 성경이 엑소테릭한(exoteric 공개적인) 계시를 나타낸 반면, 12세기 이래 유대교의 신비주의적, 마법적, 신지학적 가르침을 일컫는 데에 일반적으로 사용된 용어인 카발라는, 아담에게 그리고 다시 모세에게 주어진 계시의 에소테릭한(esoteric 비전/전승의) 불문으로 내려온 부분으로 여겨졌다, 이 단어는 "(전해) 받은 것" 또는 "전통"을 의미하며, 이는 카발라가 대대로 구전으로 전해 내려온 지식의 모음임을 암시한다. 일반적으로 사변적(이론적) 카발라와 실천적(실용적) 카발라로 구별되는데, 전자는 신지학적 이슈를 다루는 데 반해, 후자는 신성한 이름들과 히브리 문자들의 사용을 통해 (병자를 고치고, 메시야의 도래를 앞당기고, 황홀경을 얻는) 특정한 실제적이고 종말론적 효과를 만들어 내는 것을 다룬다.

 

카발라는, 1세기 팔레스타인과 이집트에 살던 유대인들 사이에 존재하던 다양한 에소테릭하고 신지학적인 흐름들로부터 발전되었다. 유대적 묵시신앙과 메르카바(보좌)와 헤칼로트(천궁) 신비주의의 초기 요소들은 헬라와 이란 그리고 영지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이런 외부적인 영향들의 규모와 중요성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하지는 않는다. 메르카바와 헤칼로트 신비주의는 다양한 세계들과 천궁들을 통과하는 위험한 상승을 기술하는 데 힘을 쏟는데, 이것은 에스겔서에 나온 하나님의 보좌의 환상에서 절정을 이룬다. 후대 카발라 사유의 주요 원천인 세페르 예치라(Sefer Yezirah 창조의 서)는 같은 시대(2-6 세기)에 속한다. 이것은 세상을 존재하도록 한 22개의  히브리 알파벳 문자와 10개의 세피롯(세피로트, 숫자들 또는 신의 현현들)이 가진 창조적 능력을 설명한다.

 

중세기 동안 이런 초기 유대 신비주의 전통들은 기독교적 그리고 이슬람적(수피교) 신비주의, 그리고 이슬람과 기독교적 신플라톤주의와 융합되어 독일 하시디즘 운동(아슈케나지 하시디즘)을 만들었는데, 이는 11세기에서 13세기에 절정을 이루었다. 대표적으로, 메르카바 신비주의 요소들과 마술을 문자와 숫자들에 대한 신비적 사색과 결합하여 대중적인 작품들을 만들어 낸 유다 헤-하시드(Judah he-Hasid)와 그의 제자 엘레아자르 벤 유다(Eleazar of Worms)가 있었다.

 

12세기 프랑스 남부에서도 같은 원천들로부터 동시에 카발라가 유래되었다. 주요 지지자들로는 랍비 아브라함 벤 다비드(Rabbi Abraham ben David)와 그의 아들 맹인 랍비 이삭(Rabbi Isaac the Blind)이 있었다. 12세기 후반에 편집된 세페르 하 바히르(Sefer-ha-Bahir)가 카발리스트들 사이에 유포되었다. 이것은 10개의 세피롯의 개념을 상술하며, 이것들이 숨겨진 신(아인/엔 소프 En Sof [무한])으로부터 발산(emanate 방출)되는 신적 권능 이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이후 카발라의 지배적인 모티프가 되었다. 부르고스, 톨리도, 헤로나에 카발리스트 센터들이 만들어졌다. 헤로나의 아즈리엘(Azriel)은 카발라 개념에 신플라톤 철학을 적용시켰다. 헤로나 카발리스트들에게는 인간의 최고의 목표는 기도와 세피롯에 대한 명상을 통해 데베쿳(Devekut<< 신과의 친밀한 교통)에 이르는 것이었다. 나크마니데스(Nachmanides)는 이 그룹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었다. 아슈케나지 하시디즘의 많은 개념들이 스페인과 남프랑스의 카발리스트들에 의해 흡수되었는데, 그들은 유럽, 이탈리아, 그리고 동방에 새로운 카발라 학당들을 세웠다. 비록 중세의 여러 신비적 카발리스트 그룹들의 가르침 간에 상당한 차이가 존재했지만, 공동의 테마는 동적 포스(힘)들의 통합(unity of dynamic forces)로서의 신의 개념이었다.

 

예언적 카발라 학당이  아브라함 아불라피아(Abraham Abulafia)의 가르침과 연관해서 일어났는데, 그는 신의 영을 끌어 내리고 황홀체험을 얻기 위해 신의 이름들과 히브리 문자를 명상하는 신비적 기법인 "조합의 과학"을 고안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스페인 카발라의 주된 산물은 1280년부터 1286년 사이에 주로 쓰여진 세페르 하 조하르(Sefer ha-Zohar 광휘의 서)였다. 책이라기보다 도서관에 가까운 조하르는 20개 정도의 독립적인 작품들로 우리어져 있다. 이것은 2세기 랍비 아키바 학당의 유명한 현인이었던 랍비 시므온 벤 요하이(Rabbi Simeon ben Yohai)의 덕분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실제 저자는 동시대 스페인 카발리스트 모세스 데 레온(Moses de Leon)이었다. 조하르와 카발라 일반의 전체 요지는 신의 본성과 그리고 사람의 신과와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지만, 거기 나타나는 그림은 유대교의 다른 곳에서 발견되는 것과는 다르다. 입법자와 할라카(Halakhah 유대율법)의 지배자, 아가다(aggadah 풍유적 랍비문학)의 자비로운 아버지, 메르카바와 하칼로트 신비주의의 무서운 왕, 또는 철학자들의 필수적인 존재가 아니라, 조하르는 신을 역동적이며 조직적인 통합체로 결합된 10개의 세피롯으로 상상한다. 각각의 세피롯은 "지혜", "이해", "권능", "아름다움", "인내", 그리고 "위엄" 등의 신의 구별된 속성을 나타낸다.

 

조하르에서 인류에게는 엄창난 권능(힘)이 주어졌다. 사람들은 신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고 신(Godhead)으로부터 유래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신적 영역에서 선과 악을 위해 영향을 주고 행동할 권능을 가진다. 기도에의 헌신과 계명의 완수를 통해 사람들은 "통합의 미스테리(sod hayihud)"에 적극 참여하게 되는데, 이 과정을 통해서 신적 포스(힘)들이 통합되고, 완성되어 그들의 원천으로 되돌아 간다. 사람이 이 세계의 회복, 치료, 수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개념은, 문자적으로 '회복'을 의미하는 티쿤(Tikkun)이라는 개념으로서 조하르 전체를 통해 강조되고 있다.

 

16세기에 이삭 루리아(Isaac Luria)의 교설로부터 유래된 새로운 형태의 카발라가 나타났다. 조하르와 그 이전의 카발라 문서들이 우주론에 집중한 반면, 루리아닉 카발라는 추방(유배), 구속, 그리고 밀레니엄(천년)에 집중했다. 루리아가 추론한 것은, 세상을 위한 공간(장소)가 있기 위해서는 신은 그 자신의 일부로부터 물러났어야만 했다는 것이다. 이 침숨(Tsimsum 물러남)의 교리는 난해하면서 모호하다. 이것은, 가장 심오한 의미에서의 추방의 상징을 (신성 스스로로부터) 제공하지만, 동시에 악이 본래 창조 과정에 속한 것이며 사람의 탓만이 아님을 암시하기도 했다. 두 개의 또다른 교리가 루리아의 급진적 신학에 필수적인데, 이것은 셰비랏 하 켈림(Shevirat-ha-Kelim 그릇이 파괴됨)과 티쿤(Tikkun 회복)이다. 두개 모두는, 창조와 함께 나타난 악은 만물의 완성과 더불어 사라질 일시적인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루리아닉 카발라의 복잡한 신화에 의하면, 신이 자신으로부터 물러선 후, 의 흔적들은 공허 속에 남겨졌다. 이것들로부터 태고의 인간, 아담 카드몬(Adam Kadmon)의 이미지가 형성되었는데, 그는 신성이 처음으로 형상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때 재앙이 일어났다. 추가적인 신의 빛들(divine lights)이 아담 카드몬으로부터 터져 나왔는데, 이들을 담기로 했던 "그릇들"이 깨졌다. "그릇이 파괴됨"에 따라, 빛의 불꽃들(sparks of light )은 물질 속으로 가라앉았고, 악이 세상 속으로 들어왔다. [블로거. 루리아닉 카발라에 따르면, 신의 빛의 발산을 담으려 했던 10개의 그릇(세피롯) 중 6개가 깨져서 이 세상에 악과 혼란이 왔고, 이것의 회복/수리가 필요하다. (참고영문<<신사도운동 등의 '회복' 교리도 이것과 유관한 것 같기도 하다.]

 

루리아닉 카발라에서는 조하르에서보다도 인간에게 더 중심적인 역할이 주어졌는데, 이는 깨어진 그릇의 파편 속에 갇힌 영혼들이 신적 빛과 재결합하는 것은 오직 인간의 행동(율법 준수, 토라 공부, 신비적 명상)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루리안은 역사를, 동일한 등장인물들이 연출하는 선과 악의 포스(힘) 사이의 지속적인 투쟁으로 보았는데, 그들은 그들이 완전에 이를 때까지 거듭되는 환생(Gilgul)을 경험한다. 비록 티쿤(회복)의 과정은 길고 고되겠지만, 추방된 존재 각각이 창조의 사다리를 올라가서 [참고<<] 끝내 그가 윤회의 고리로부터 해방될 때까지 점점 선하고 더욱 영적으로 됨으로써, 회복은 마침내 이루어질 것이다. 루리아닉 카발라는, 사람들의 모든 행동이 의미를 갖는 우주적 천년(millennial) 드라마 속에 개인을 참여시킴으로써, 신비주의를 운동가들의 실존하는 포스로 변혁시켰다. 루리아닉 카발라는, 상실한 이상적 과거에 있어서가 아니라 미래 상태에 있어서의 완성을 그린 첫번째의 유대교 신학이었다.

 

게르솜 숄렘은 루리아닉 카발라가 1630년 이래로 "참된 유대교 신비주의 신학 같은 것"이 되었다고 믿었다. 그는 샤베타이 체비(Shabbetai Tzevi)와 연관된 이단적 운동을 루리아닉 카발라 속에 내재하는 메시아닉 사상 탓으로 돌렸다. 숄렘의 견해로는, 샤베타이 체비의 종국의 배교와 이슬람으로의 개종은 유대교의 위기를 일으켜서 하스칼라 또는 세속적 깨달음(Enlightenment 계몽)을 촉진시켰다. 따라서 카발라는 유대 역사와 문화를 변혁시키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모든 학자들이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이델 등은 메시아신앙이 루리아닉 카발라의 중요한 요소였음을 부정한다. 그들의 견해로는 사바티안 운동은, 대중적 묵시적 메시아 신앙과 - 주로 기독교인들과의 빈번한 사회적 지성적 접촉에 따른 - 세속화의 부산물이었다.

 

유대 카발라 발전의 최종 단계는, 18세기 중반 랍비 이스라엘 바알 솀 토브(Rabbi Israel Baal Shem Tov)가 창설한 현대 하시딕(하시디즘) 운동의 등장과 함께 일어났다. 이 운동은 유대교 내부에서 하시드들과 그들의 합리주의자 반대파(미트나게딤) 사이의 심각한 불화를 일으켰는데, 반대파는 하시디즘이 유대 율법의 중요한 면을 - 특히 토라 공부와 기도를 - 무시하고 대신 하시딕 랍비 또는 짜디크(Tsaddik 거룩한 사람)의 구속적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했다고 주장했다.

 

크리스천 카발라

 

카발라에 대한 기독교적 관심은 15세기 말 플로렌스의 메디치 궁정에 있던 플라톤 아카데미로부터 나타랐다. 카발라는 "태고신학"(prisca theologia) 또는 고대 지혜(Ancient Wisdom)[참고: 이머징교회와 고대지혜<<]를 되찾는 자료로 여겨졌으나, 그 근원이 이교가 아닌 유대교였기 떄문에 카발라 문서들은 이 신적 지혜의 가장 순수한 자료로 간주되었다. 이것이 여러 유대교 선생들[이름 생략]의 도움을 받아 카발라를 연구한 지오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Giovanni Pico della Mirandola)의 견해이다. 피코의 카발라 연구는 기독교의 진리를 뒷받침하는 유대인들의 고대 지혜를 보여줌으로써 유대인들을 개종시키려는 목적을 가졌었다. 그의 유명한 900개의 논문 중 47개는 카발라로부터 직접 가져온 것이며, 또 다른 72개는 카발라에 대한 그의 사색에 기초한 것이었다. 연구 결과로서 그는 "마법과 카발라보다 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확신시키는 과학은 없다"라고 결론지었는데, 카톨릭 교회는 이 의견을 비난했다. 피코의 작업은 독일 크리스천 히브리 학자 요하네스 로이힐린에게 영향을 주었는데, 그는 "마법에 관해서"(De Verbo Mirifico)와 "카발라 과학에 관해서"(De Arte Cabalistica)를 썼다. 로이힐린은 신이 스스로를 세 단계로 계시했다고 주장했다: 첫째, 족장들에게 3글자 이름 샤다이(Shaddai)를 통해서; 그리고 토라에서는 네글자 테트라그라마톤(Tetragrammaton)으로; 마지막으로 5글자 이름인 여호수아(Yehoshua) 또는 예수로. 피코와 로이힐린의 작업은 다른 크리스천들에게 카발라를 탐구하도록 조장했다. 코르넬리우스 아그리파는 "오컬트 철학"(De Occulta Philosophia) 속에 실천적 카발라에 대한 논의를 집어 넣었고, 이는 카발라를 마법과 요술과 연합하도록 유도했다. 에지디오 다 비테르보(Egidio da Viterbo) 추기경은 히브리 문자에 대한 논문을 썼다. 프란체스코수도회의 프란체스코 디 지오르지오(Francesco di Giorgio)는 "세계의 조화"(De Harmonia Mundi)와 "문제들"(Problemata)에서 조하르의 내용을 포함시켰다. 기욤 포스텔(Guillaume Postel)은 세페르 예치라와 조하르 일부를 주석과 함께 라틴어로 번역했다. 카발라와 연금술의 융합이 16-17세기에 나타나서, 하인리히 쿤라트(Heinrich Khunrath)의 "영원한 지혜의 원형극장"(Amphitheatrum Sapientiae Aeternae)와 로버트 플러드(Robert Fludd)와 토마스 번(Thomas Vaughan)의 저작에서 나타난다. [블로거. 이들은 모두 장미십자회와 관련이 있다.]

 

17세기 야콥 뵈메<<의 작품들은 카발라와의 밀접성 때문에 주목받았으며, 독일 예수회의 아타나시우스 키르허(Athansius Kircher)는 아담 카드몬과 예수 간의 유사성을 끌어냈다. 하지만 가장 영향력 있는 크리스천 카발리스트는 크노르 폰 로젠로트(Christian Knorr von Rosenroth)였는데, 그의 "카발라의 신비"(Kabbala Denudata)는 19세기 이전에 라틴어를 사용하는 대중들에게 가장 많은 양의 카발라 문서를 제공했다. 이 문서들이 특별히 중요한 이유는, 그 속에 조하르를 (주석과 논평과 함께) 발췌한 것과 그리고 루리아의 제자들인 하임 비탈(Hayyim Vital)과 이스라엘 사루그(Israel Sarug)가 쓴 논문들의 번역과 줄거리가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근래에 이르러서야 이 작품과 카발라가 어떻게 헨리 모어, 라이프니쯔, 로크, 뉴턴 같은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주어서 과학의 진보의 현대적 아이디어와 관용(toleration)의 개념에 이바지하게 했는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외팅거/외틴게르(Friedrich Christoph Oetinger)가 이끈 독일 경건주의자들 역시 폰 로젠로트의 번역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는 다시 프란츠 폰 바더, 파스콸리, 생 마르땡, 헤겔과 셸링(Franz von Baader, Martines de Pasqually, Louis-Claude de Saint-Martin,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and Friedrich von Schelling)에게 영향을 주었다. 게오르그 폰 벨링(Georg von Welling)은 그의 대중적인 그의 "오푸스 마고 - 카발라와 신지학"(Opus Mago-Cabbalisticum et Theosophicum)를 1735년에 출판했다. 크리스찬 카발라의 최후의 대작은 프란츠 요세프 몰리토르(Franz Josef Molitor)의 "역사의 철학, 전통에 대해서"(Philosophie der Geschichte oder Ueber die Tradition)로, 기독론적 접근에도 불구하고 숄렘으로부터 높은 찬사를 받았으며 카발라에 대한 그 자신의 관점에 영향을 주었다. 18세기 프리메이슨일루미나티, 그리고 장미십자회의 신지학적 시스템 역시 카발라적 개념들과 심볼리즘을 반영했다. 불행히도 이 연관은 반유대주의자들의 손에 놀아났는데, 그들은 혁명적 프리메이슨과 카발리스트들의 유대 "도당"(cabale)이 유럽 기관들에 침투해서 내부로부터 그들을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유럽에서의 카발라의 유산은 야누스적 얼굴을 가진다: 카발라는 한편으로는 깨달음(계몽)의 중심에 있는 개념들 - 과학적 진보, 스스로의 운명을 빚을 수 있는 사람의 능력, 그리고 종교적 관용 -  에 기여했지만, 다른 편으로는 카발라는 인종학살의 기반을 놓은 반유대적 수사에 반영되었다.

 

[참고글]

영지주의, 카발라, 뉴에이지의 공통점<<

유대 카발라가 말하는 사람의 길<<

"고대 지혜"의 출현<<

 

[2014/10/9 추가]

요사이 유행하는 "임박한 종말론자"들의 소위 "신부단장"에도 카발라 사상이 들어 있는 듯하다. 그들은 토라의 읽기와 명상, 그리고 토라준수를 통해 신부단장을 해야하며, 그럼으로써 그리스도의 신부들이 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행동을 통해서만 회복, 즉 신과의 결합(또는 결혼)이 가능하다는 루리안 카발라의 주장과 통하는 사상 아닌가? 

 

[2014/10/20 추가]

카발리스트가 말하는 카발라적 우주론과 인간론의 요약이다. (출처<<)

 

우주는 무한자(아인소프)로부터 방사된 10개의 세피로트로 구성돼 있고 그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아담 카드몬이라는 원형인간의 체를 이루고 있다. 인간은 그러한 대우주인의 반영으로 내면에 신성이 갖추어져 있다. 인간은 자신의 노력을 통해 신성을 완전히 체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신의 꼭두각시가 아니라 우주(또는 세계) 창조와 진화에 있어서 능동적인 참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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